[] 2026년 2월 20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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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이사야서는 ‘참된 단식’ 이야기입니다.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하느님께서 백성들이 했던 단식을 질책하시며, 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백성들이 단식의 참된 목적을 잃어버렸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단식하며 배고픔을 느낀다면, 마치 이집트의 십장처럼 자기 종들을 다그치고 부릴 수 있겠느냐고 질책하셨습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단식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오가 전해주는 오늘 복음은 ‘단식 논쟁 – 새것과 헌것’ 이야기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여기서 혼인잔치의 신랑이라는 이미지는 구원의 날에 오시는 하느님을 상징하는데,
이 이미지를 예수님께 적용하며, 축제의 날 단식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에 모두 단식하게 될 터인데, 그 단식은 단순히 절제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단식을 통해서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의 곤경 속에서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
단식은 속죄를 위한 참회의 한 형태입니다.
단식하는 목적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배부른 사람들에게 단식하라고 시켰습니다.
굶어서 배고픔을 느껴보고,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을 가지도록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굶주린 이들, 가련한 이들, 헐벗은 이들을 향하여 자선을 베풀어야 할 이유를 깨닫는 것이 단식의 본래 정신입니다.
단식과 자선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단식하면 자선합니다.
자선하지 않으면서 하는 단식은 거짓 행위입니다.
빼앗긴 신랑을 위해 단식한다면,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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